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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S급 천재를 걷어찬 삼성

제임스-딘딘 2011. 8. 11. 21:11

S급 천재를 걷어찬 삼성

이병철 삼성 회장은 사람 욕심이 많았다. 70대의 노(老) 경영자는 20대 초반인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을 보곤 한눈에 ‘물건’임을 알아차렸다. 재일교포 2세인 손씨가 미국 버클리대 유학 시절 이야기다. 이 회장은 미국에 나가있던 자신의 사위인 정재은 삼성전자 대표(현 신세계 명예회장)에게 “손군이 삼성에 어떤 도움이 될지 살펴보라”는 특명을 내렸다. 정 대표는 직접 손씨를 만났으나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손 사장이 새롭게 떠오른 인터넷 분야에서 승승장구한 뒤에야 “장인 어른의 사람 보는 안목이 남다르다”며 무릎을 쳤다. 이때 맺어진 삼성과 손 사장의 아름다운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요즘 손 사장은 이따금 이 회장 손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골프를 치며 경영의 지혜를 나누고 있다.


삼성의 인재 욕심은 대물림 된 모양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얼마 전 선진 제품 비교전시회에서 “S(수퍼)급 천재를 악착같이 확보하라”고 다시 강조했다. 삼성은 ‘S급 인재’를 모시려 해마다 전용기를 50차례나 띄운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에 자극받아 천재를 향한 갈증이 더 간절해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요즘 미국 아마존의 베스트셀러인 『플렉스에서(in the plex)』를 보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구글 이야기를 다룬 이 책에는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Andy Rubin)이 2004년 삼성전자를 찾아온 대목이 나온다.


앤디 루빈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는 안드로이드 위상을 감안하면 루빈은 잡스에 버금가는 천재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는 “내 돈으로 항공권을 끊었다”며 제 발로 갓 만든 안드로이드를 팔기 위해 삼성전자를 찾아왔다. 당시 상황에 대한 기억도 선명하다. “동료와 둘이서 청바지 차림으로 거대한 회의실로 갔다. 청색 정장 차림의 간부 20명이 벽을 따라 도열해 있었다. 삼성의 본부장(루빈은 실명 대신 Division head라 표현했다)이 들어오자 일제히 착석했다(그에겐 한국의 특유한 기업 문화가 인상 깊었던 것 같다). 프레젠테이션을 지켜본 본부장은 너털웃음부터 터뜨렸다. ‘당신 회사는 8명이 일하는구먼. 우리는 그쪽에 2000명을 투입하고 있는데…’. 전혀 칭찬이 아니었다.” 가격을 물어보기도 전에 협상은 깨졌다.

이듬해 구글은 구멍가게 안드로이드를 5000만 달러에 집어삼킨다. 그 직후 16억5000만 달러를 쏟아 부은 유튜브 인수와 비교하면 얼마나 ‘껌값’인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삼성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무려 3년 전에, 그것도 OS(운영체제)를 공짜로 나눠주자는 황당한 풋내기 벤처를 누가 선뜻 믿겠는가. 고작 직원이 8명인 실리콘밸리의 애송이를 세계적 거대기업인 삼성전자 본부장이 만나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일지 모른다. 만약 삼성이 안드로이드를 인수했다면 지금처럼 세계적 히트를 쳤을지도 궁금하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구글이 미래를 내다보며 과감하게 선(先)투자를 한 반면, 삼성은 제 발로 찾아온 천금 같은 비즈니스 기회를 걷어찼다는 점이다. 땅을 치고 후회한들 어쩔 수 없다. 인재를 보는 안목이 두 회사의 운명을 가른 것이다. 지금 삼성은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목을 매고 있다. 루빈은 삼성전자의 갤럭시폰이 출시될 때마다 “근사하게 만들었다”며 등을 두드려주는 거물이 됐다.

 애플의 머리이자 심장은 잡스다. 그가 복귀한 뒤 애플 주가는 14년간 70배나 뛰었다. 드디어 엑손모빌을 제치고 시가총액마저 세계 1위 자리를 꿰어찼다. 단 한 명의 위대한 천재가 세상을 뒤바꾸는 기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삼성의 구호는 ‘인재 제일’에서 ‘한 명의 천재가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로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하지만 손정의와 루빈의 사례를 보면 과연 삼성의 사람 보는 안목이 30년 전보다 나아졌는지, 고개를 끄덕이기 쉽지 않다. 인재관은 진화(進化)해도 정작 사람 보는 더듬이는 퇴화(退化)됐는지 모를 일이다.